
조급증
중학교 다닐 때쯤 언니를 따라 미술학원에 간 일이 있다.
혹시 나한테도 숨겨진 재능이 있을까 하는 얼토당토 않은 기대 반 호기심 반이었던 거 같다.
미술학원에 간 첫날 학원에서는 종이에 줄 긋는 연습을 시켰다.
그냥 연필로 가로로 길게 흔들림 없이 쭉 그어보라는 거였는데 계속 줄만 그으려니 정말 재미가 없었다.
그래도 첫날이라 그러려니 하고 참았다.
다음날 이제는 뭔가 진전된 걸 시키겠지 했는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하루 정도 더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더이상 미술학원을 가지 않았다.
당시 난 빨리 아그리파 같은 조각상을 그려보고 싶었다.
언니가 매일 미술학원에서 그려오는 그림들을 보고 나도 그런 그림들을 그릴 줄 알았던 것이다.
언니는 원래 그림에 소질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 단계를 건너뛰었는지도 모르겠다.
줄 긋기는 분명 기초를 닦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난 조급한 마음에 그 단계를 참지 못했다.
물론 내가 미술에 소질이나 취미가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미술은 사소한 것이었을 뿐이고 이후에도 조급한 마음은 번번이 일을 그르치게 할 때가 많았다.
며칠 전 엄마가 말씀하셨다.
"요즘 도대체 뭐하느라 그렇게 바쁜거야. 얼굴도 못 봐. 아침에 얼굴 보면 끝이야"
겉으로는 별 거 아닌 것처럼 웃었지만 순간 흠칫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틈만 나면 스팀잇에 접속해서 시간을 보냈다.
나도 모르게 1일 1포스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조금 더 천천히 해도 되는 건데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모르겠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꼭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조급하게 집착해서 할 일이 전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늘 하던 산책도 횟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잠깐 시간이 나면 밖에서도 스팀잇을 들여다보기 일쑤였다.
비교적 한가한 시기지만 사실 이 기간 할 일이 많은데 미처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생활에 신호등의 빨간 불이 켜진 느낌이었다.
문득 시간을 줄여야겠다 생각했다.
매일 혹은 2일에 한번이라도 포스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마음 가는대로, 내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조급함은 어느새 몸에 배어버린 거 같다.
조급한 마음 때문에 중요한 걸 놓치고 싶지 않다.
천천히, 무엇이든 주위를 돌아보면서 천천히 해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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