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일기| 감정의 강가

감정 중에는 가만히 들여다볼수록
점점 더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우울함이나, 자기연민, 증오 같은 감정들.
정당한 '화'가 아니라 자신을 갉아먹는 감정이 찾아올 때면
속수무책으로 무기력에 빠지게 되는데,
그런 종류의 감정들은 종종
거기에 빠져서 살아도 된다는 당위성을 부여하는 듯하다.
내가 우울하니까, 내가 불쌍하니까, 내가 널 미워하니까.
나아가서는 내가 날 미워하니까, 까지.
웅크리고 그런 걸 주장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은 많지 않고
타인을 죄인으로 만드는 것밖에 없음에도
그 안락한 어둠에 빠져버리면 좀처럼 헤어나올 수 없다.
무기력에 빠지더라도 감정이 전부가 아니고
심지어 내 감정이 나를 속이기도 한다는 걸,
그래서 때론 거기서 발을 빼고
그저 흘러가도록 내버려 둘 줄 알아야 한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삶의 너무 많은 시간을 잃었다.
두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지,
겨울에는 나무를 베지 말라고.
마음이 저조한 날에 떠오른 생각에 속지 말라고.
이 두 문장만큼은 평생
감정이 휩쓸고 지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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