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는 죽었다
<아빠는 죽었다>
열두 살의 나는 아빠 지갑에서 돈을 훔치는 버릇이 있었다. 나는 이 나쁜 버릇 때문에 아빠에게 두 번이나 잔소리를 들었지만 이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아빠는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된다면서 따뜻한 이야기로 나를 설득하셨지만, 내 마음은 얼음이었다. 나는 다시 아빠 지갑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내 마음속에 얼음은 녹아버렸다.
그날 밤. 아빠가 안방으로 들어오라고 내게 말했다. 아빠의 여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온몸이 찌릿했다. "젠장. 올 것이 왔구나. 이번에는 뭐라고 변명을 할까. 삼십 분 동안 잔소리가 시작되겠지. 이참에 아빠한데 쥐꼬리만한 용돈 좀 올려달라고 말해볼까. 안방에 들어갈 때까지 나는 가난한 아빠가 미웠다. 부자 아빠가 되지 못한 우리 아빠를 원망스러워했다.
안방으로 들어가서 아빠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잘못을 뉘우치는 척하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로 눈동자를 굴리면서 아빠의 모습을 예의주시했다. 아빠는 멍 때리고 있었다. 어떤 생각에 깊게 빠진 거 같았다. 아빠는 나를 안방으로 부르기 전에 내게 무슨 말을 꺼낼지 결정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빠의 몸은 돌처럼 굳어있었다. 어쩌면 아빠는 겁에 질린 거 같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아들에게 위엄있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용기가 없어 보였다.
십 분이 지났을까. 아빠도 나를 향해서 무릎을 꿇는다. 고개를 숙인다. 마치 죄인인 것처럼. 아빠의 돌발 행동에 나는 긴장했다. 나는 안방으로 들어올 때 아빠에게 당당하게 말하기로 스스로 다짐했었다. 소 도둑이 안 될 자신이 있다고. 바늘 도둑에서 멈출 자신이 있노라고. 하지만 아빠가 죄인인 것처럼 힘 없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일 때 내 시계는 멈췄다. 심장이 바깥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아빠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몇 대 맞을래?" 말도 안 돼. 아빠가 나를 때린다고? 나는 지금까지 아빠한데 맞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빠가 회초리를 드는 모습을 상상한 적도 없었다. 그런 아빠가 나를 때린다고? 내가 미처 예상치 못한 상황이 계속됐다.
나는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다섯... 아니 열 대 맞을게요." 아빠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아빠는 회초리를 손에 쥐고 내 손을 향해 내리찍었다. 한 대. 두 대. 세~대. 네대. 다..섯... 아빠는 회초리를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아빠는 울었다. 아들을 잃어버린 것처럼. 잘못한 건 나인데, 아빠가 나를 향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엉엉 울었다. 딸꾹질까지 하면서 말이다. 엉망진창스러운 아빠의 모습에 나도 울음이 터져나오고 말았다. 곧 딸꾹질까지 나왔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두 남자는 서로를 향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딸국질을 하면서 울기만 했다.
두 남자의 슬픔이 안방을 가득 채울 때쯤 아빠가 내게 말을 건넸다. "미안하다고. 아빠가 용돈을 많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능력 없는 아빠를 만나게 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이 모든 게 아빠 잘못이라고."
그 날. 아빠는 아들 앞에서 무너져내렸다. 교과서에 설명되는 가족의 경제력을 담당하는 아빠는 죽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빠는 내 눈앞에서 죽어버렸다. 아빠는 아이의 도둑질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소심한 남자였다. 아이의 도둑질 앞에서 위엄있게 회초리 한번 들지 못했던 나약한 남자였다. 이렇게 소심하고 나약한 남자 한 명이 '아빠'라는 가면을 쓰고 아들을 지켜왔을 뿐이었다.
아빠가 이제 나가도 좋다고 한다. 나는 안방을 나왔다. 내 방으로 갔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 잘못 없는 아빠를 울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열 두살의 아들 앞에서 아빠를 무너지게 만들었던 내 자신이 미웠다. 그리고 아빠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삼십 분이 지났을까. 아빠가 내 이불 속으로 들어온다. 나를 꼭 안아준다. 아니, 내가 아빠를 꼭 안아줬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 나약하고 소심한 남자를 사랑하겠노라고.
ㅡㅡㅡㅡ
설날을 맞아 아빠랑 저녁을 먹었습니다.
오늘 이 글을 아빠에게 보여드렸습니다.
아빠가 아무 말도 안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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