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한 감정에 충실하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고 나와 할아버지는 불행했다.
저녁 6시쯤 할아버지가 편의점에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불닭볶음면 까르보나맛을 샀다. 할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나 이거 만들 줄 몰라, 이것좀 만들어줘봐.“ ‘줘봐’라니… 나는 어이가 없었다. ‘줘봐’는 명령형이 아닌가. 아무리 나보다 나이드신 분이라 하더라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굉장히 불쾌했다. 이런 명령형말투는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고. 후…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할아버지 명령에 대답하지 않았다.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무뚝뚝하게 라면을 만든다. 할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그,,, 뭐냐 그,,, 날짜 지난 도시락 같은거 있잖아. 그거 있으면 좀 줘봐. ‘줘봐’라니… 숨을 내쉬었다. 눈을 감았다 떴다 3번 반복했다. 나는 웃었다. “아,,, 지금 유통기한 지난 도시락이 하나도 없어요 ㅠ” 나는 할아버지에게 거짓말 쳤다. 나는 알고 있다. 창고에 유통기한 지난 도시락이 있다는 사실을. 허나, 나는 내 앞에 서있는 무례한 할아버지에게 공짜로 도시락을 드리기 싫었다. 나는 다짐했다. 내 불쾌한 감정에 충실하겠노라고.
내 감정에 충실하겠노라고 다짐했건만, 고민에 고민이 이어졌다. 도시락을 줘야 되는가, 말아야 되는가로. 물론 할아버지를 향한 따뜻한 마음은 없다. 다만 날짜 지난 도시락을 음식물쓰레기로 처리해야 되는 귀찮음과 나를 불쾌하게 만든 할아버지를 기쁘게 만들 수 없다는 괘씸함이 저울질 됐다. 괘씸함. 적의. 내가 귀찮게 도시락을 음식물쓰레기로 버리는 한이 있어도 무례한 할아버지를 기쁘게 만들 수 없다는 감정. 이 무시무시한 감정. 서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감정.
라면이 완성됐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나무젓가락을 달라고. 나는 아무 말없이 드렸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나를 또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계산대 근처에 놓여있는 봉투를 휙 가져갔다. 아무 말도 없이. 아니… ‘그렇게 말도 없이 봉투를 가져가시면 안돼죠’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가라앉았다. 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에게 도시락를 건네지 않았던 내 선택이 옳았음을.
할아버지가 편의점을 나갔다. 당연히 고맙다는 말도 없이…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편의점을 나가는 할아버지를 멍하니 쳐다봤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 내 선택이 후회스러웠다. 할아버지에게 도시락 드릴 걸…. 집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는 할아버지가 쓸쓸해 보였다. 할아버지에게 끝내 도시락 주지 못한 내 자신도 쓸쓸했다.
저녁 6시에 편의점에 와서, 라면 하나를 사고, 날짜 지난 도시락을 달라던 뻔뻔한 할아버지가 너무 쓸쓸해 보였다. 저 쓸쓸한 할아버지는 불행해 보였고, 저 쓸쓸함을 채우지 못한 나도 불행했다. 그렇다. 할아버지와 나, 우리는 서로 불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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