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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22] '당신의 마음까지 치료합니다' … 내가 '녀석'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약국에 가면 꼭 3통씩 사는 약이 있습니다. 바로 ‘타이레놀’인데요. 제겐 ‘만병통치약’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집에 하나, 가방에 하나, 회사 책상 서랍에 하나, 제가 생활하는 곳엔 언제나 ‘타이레놀’이 있습니다.
제가 타이레놀에 ‘집착’하게 된 최초의 때는 아마 중학교 3학년 무렵인 듯 합니다. 시작은 두통 때문이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2주일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고통의 빈도가 잦아지더니 결국 3일마다 타이레놀을 입에 털어넣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혹시 몰라 ‘두통 클리닉’에도 가봤는데 큰 이상은 없고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뻔할 뻔자의 말만 늘어놓더군요. 정말 타이레놀보다도 못한 위로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타이레놀을 찾게 된 건 심각한 어깨 근육통. 가뜩이나 두통이 빈번한데 어깨마저 항상 굳어있으니 그야말로 설상가상이었습니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있다보니 자연스레 어깨가 앞으로 말리고 목과 등도 점점 굳어갔죠. 어깨와 목을 타고 뇌에 올라가야하는 신경과 피가 막힌 느낌. 어김없이 타이레놀을 입에 털어넣습니다.
그렇게 10년 이상 타이레놀을 장기복용하고 있는데, 이젠 제가 타이레놀을 먹는 것인지 타이레놀이 저를 먹는 것인지 알길이 없네요. ‘아프면 타이레놀’이라는 공식이 체화된 것 같은 느낌. 어쩐지 타이레놀을 먹어야 안심이 됩니다.
언젠가 한 번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타이레놀의 성분을 조사해봤더랬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적정량을 섭취하고 알코올과 혼용하지 않은 한 별탈이 없는 ‘현존하는 최고의 진통제’라고 하더군요. 내성은 물론 부작용도 거의 없는 안전한 아닐린계 화합물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다만 현존하는 약물 중 간독성이 가장 큰 약물이라고 하더라구요. 성인의 경우 500mg을 기준으로 하루 최대 8알까지 섭취가 가능합니다. 물론 텀을 두고 먹어야지 한 번에 8알은 안 돼요! 그리고 당연한 말씀이지만 술과 함께 먹을 경우 진짜 ‘골’로 갈 수 있습니다. 타이레놀 뿐만 아니라 ‘약’이라고 이름 붙은 모든 것들은 알코올과 상극입니다. 술마시고 머리가 빠개진다고 두통약 드시면 그야말로 ‘지인지조’... 스스로 생명단축의 꿈을 실현하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제 생활 일부분으로 자리잡은 타이레놀과 관련된 기사를 하나 보게 됐습니다. "진통제 타이레놀·이부프로펜, 마음의 아픔에도 영향"이라는 제목입니다. 기사 내용을 짧게 요약해보자면,
의사 처방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진통제인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과 이부프로펜(애드빌, 모트린)이 신체의 통증만 가라앉히는 데 그치지 않고 감정과 이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학의 심리학·뇌과학 연구실의 카일 래트너 박사가 지금까지 발표된 관련 연구논문들을 종합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고 영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래트너 박사 실험 결과에 따르면 타이레놀을 복용한 사람은 신체적 고통을 당하거나 가슴 아픈 일을 겪거나, 불쾌감을 주는 사진을 보았을 때 약을 복용하지 않은 사람보다 슬픈 감정을 덜 느낀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진통제가 마음의 고통까지 경감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뜻입니다.
래트너 박사는 "신체적 통증은 신체 손상이 발생한 부위에서 느껴지지만 신체적 통증이 기록되고 처리되는 곳은 뇌"라며 “우리가 '가슴이 찢어진다'고 말할 때 정작 그 감정이 느껴지는 곳은 뇌”라고 설명했습니다. 다시 말해 몸이든 마음이든 그 아픔의 척도는 뇌가 판단하며 그 뇌를 잠재우는 게 바로 진통제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영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이상한 실험’을 많이 하는 곳이기 때문에 믿거나말거나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만, 이 실험이 사실이라면 타이레놀을 먹는 행위는 조금 다른 의미의 ‘플라시보 효과’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픈 몸을 달래기 위해 먹은 타이레놀이 지쳐버린 마음까지 보듬어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녀석이 기특합니다ㅎ 사실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육신과 정신을 따로 분리한다는 게 불가능하니까요.
오늘도 역시 삼천포로 빠진 느낌이 듭니다만, 요지는 하나입니다. 날씨도 춥고 코인판도 꽁꽁 얼어붙은 요즘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자신만의 ‘타이레놀’을 찾아 꿀꺽 삼켜보세요. 저처럼 진짜 약일 수도 있고 어떤 분한텐 따뜻한 커피 한 모금, 또 어떤 분은 화끈한 액션 영화일 수도 있겠네요ㅎ 몸을 다스리는 자, 마음을 다스릴 수 있고, 마음을 다스리는 자,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잖아요?(없는 말인가요..? 꼭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없다면 제 생각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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