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33] 하늘이 먹먹한 날, 감춰둔 내가 튀어나오는 날.
출근길, 날씨가 너무 흐리다. 흐리다 못해 우중충하다. 코 끝에 와닿는 공기냄새도 별로다. 춥진 않은데 차라리 추운 게 낫다 싶다.
이렇게 주위가 먹먹한 날엔 ‘하고 싶지 않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마음 속 깊이 묻어둔 어두운 그림자가 갑자기 툭 하고 나를 지배한다. 차곡차곡 쌓아온 기분 나쁜 기억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이런 날씨가 싫다.
나는 날씨에 민감한 편이다. 특히 오늘 같이 음습하거나 비가 오는 날 더 그렇다. 차라리 비가 오는 게 낫다고? 아니다. 비는 내 상념들을 씻어주는 게 아니라 나를 저 어둡고 냄새나는 하수구로 쓸어보낸다. 적어도 나에겐 비가 최악이다.
흐린 날엔 어김없이 가위에 눌렸다가 깬다. 가위가 눌린 날 창밖을 보면 여지없이 흐리거나 비가 내린다. 이쯤되면 내가 하늘을 지배하는 건지 하늘이 나를 놀리는 건지 알길이 없다.
오늘 아침도 마찬가지였다. 출근준비를 하며 거울 속 내게 주문을 걸었다. ‘평소처럼만...’
나는 평소에 무척 밝은 사람이다. 아니 밝은 ‘척’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딱 오늘 날씨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잘 동화되고 싶어 밝은 척 할 때가 많다. 나는 나를 숨기는 연기를 꽤나 잘하는 듯 싶다.
25살 이전 친구들의 수보다 25살 이후에 사귄 친구들의 수가 곱절은 많다. 무언가 ‘사회생활’이라고 불릴 만한 행위를 할 때쯤부터 나는 내 어두운 자아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내 본질과 본성을 오롯이 이해해주는 사람과만 어울리고 사귀었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감추지 않는 게 상대방에 대한 진정성이라고 믿었다. ‘양보다 질’이라는 수식어는 인간관계에서도 그대로 통용된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이 생각에는 큰 변함이 없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나를 설명하는 데 지쳐갔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성인이 된 시점부터는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전부 웃고 넘긴다. 노력으로 성격을 바꿨다. 나는 내가 얼마만큼 차갑고 냉정해질 수 있는지를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다. 그래놓고 마음 속으론 얼마나 후회하고 아파하는 지도. 내 감정을 숨기는 고통보다, 나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을 두고두고 떠올리고 곱씹을 고통이 더 크다.
내 오랜 친구들은 지금의 날 보며 놀라곤 한다. 시니컬하고 세상 염세적이던 아이가 까칠함이 다 사라졌다며 소위 말하는 ‘으른’이 됐다며. 그 전까진 얼마나 성격 파탄자였다는 말인지... 살짝 기분이 나쁘다가도 ‘잘 변하고 있나보다’ 하며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날엔 나를 숨기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냥 말을 하지 않는다. 말수가 현저히 줄어든다. 평소엔 입에 모터를 달고 있다. 때문에 주변사람의 행동이나 표정변화에 민감한 사람들은 금방 알아챈다. “오늘 무슨 일 있어? 말도 없고 표정이 안 좋네” 이런 말을 들으면 일단 고맙다. 적어도 내게 관심이 있다는 표현이다. 하지만 이내 ‘그냥 내버려뒀으면 좋겠는데’ 싶다. 그래서 그냥 “날씨가 우중충해서요”라고 말하며 웃어 넘긴다.
오랜 친구들은 이런 날씨면 앞뒤 없이 “씽어쏭 오늘 기분 구리겠네. 파이팅하고 초코우유나 먹어”라는 카톡을 보낸다. 쳇. 나를 너무 잘 알아서 또 기분이 나쁘다.. 그래서 답장은 패스한다.
글을 마무리 하려는데 아까보다 날씨가 좋아진 것도 같다. 쓴 글을 읽어보니 지워야 될 것 같다. 스팀잇에 영구박제 되기엔... 그래도 이런 날씨에만 쓸 수 있는 글이라 남겨본다. 이런 나도 있다고, 이런 나도 나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의미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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