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 참여] 나의 어린 시절: 처음으로 삥뜯긴 날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그러니까 내 키가 160이 아직 안됐을 때였다. 물론 지금도 작은 건 함정. 어쨌든, 그 나이또래에는 친구들끼리 학원에 다같이 몰려다니는 게 유행이었다. 나도 유행을 따랐다. 우리 학원은 내가 살던 동네에서 제일 유명한 큰 학원이었다. 학원계의 삼성전자라고나 할까.
어느 여름날이었다. 해질 무렵 나는 친구들과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자그마치 여섯 명이었다. 우리를 위해 평화롭고 넓게 펼쳐진 길 위에 우리는 학익진을 펼치고 걸었다. 나는 맨 오른쪽이었다. 이게 시발(始發)이었다.
우리 맞은 편에는 노란색, 핑크색 티셔츠를 입은 고딩 형아 두 명이 비틀비틀 걸어오고 있었다. 딱 봐도 취했다.(잠깐, 고딩인데 취했다고?) 나는 상황 파악을 잘한다. 너무나 무서웠다. 그 형들이 10m 사정거리에 들어왔을 때 난 이미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숨 쉬면 나의 존재를 들킬 것만 같았다.
그 형들은, 키도 컸다. 옷도 잘 노는 형처럼 입었다. (그냥 노랑, 분홍 티셔츤데...) 머리도 샤기컷이었다. (이게 핵심이었다.) 그당시 나와 친구들 5인방은 귀두컷이었다.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취해있었다. 딱 봐도 고딩인데 취해있었다는 건, 저 형들은 무서운 형들이라는 소리다.
다시 말하지만, 난 맨 오른쪽에 있었다. 그 형들이 내 오른쪽 어깨빵을 치면서 시비를 걸 것 같았다.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오른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래야 내 반대편 맨 왼쪽에 있는 녀석이 어깨빵을 당하니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어깨빵이라면, 그건 내가 아니어야 한다.
그런데 저 녀석도 눈치가 보통이 아니었다. 내가 친구들을 오른쪽으로 유인하자 저 녀석은 단순히 끌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튀어나갔다! 결국 우리 무리는 3:3으로 갈라졌다. 이제 내가 걸릴 확률은 2:1이다. 아니, 오히려 더 낮아졌다! 가운데 있던 두놈도 타깃이 됐으니까 4명 중 하나다!
그렇게 안심하던 찰나, 핑크 형이 방향을 확 틀어 내게 돌진했다. 그리고 난 보기좋게 어깨빵을 당했다. 생각할 틈도, 피할 틈도 없었다. 멀쩡히 가던 나한테 미식축구 하듯 달려들었으니까. 그러고선 개빡쳤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 핑크 형이 말했다. "아나 야ㅡㅡ 사과 안하냐?" 지가 달려들었는데 사과는 내가 해야했다. "죄..죄송합니다." 사과했다. 거기서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건 제정신으로는 못할 짓이다.
처음부터 내 계산은 틀렸다. 아니, 틀린 게 아니라 할 필요도 없는 계산이었다. 그 형들은 처음부터 우리 무리 중 제일 순둥하게 생기고 왜소했던 나를 타깃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제 난 어떻게 되는거지?" "이대로 중국으로 끌려가 인신매매 당하는건가?" "아니면 죽기 직전까지 패고 앵벌이 시키는건가?" 그때 나는 매우 가능성 높은 후보들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해보니까 우린 여섯 명이고 저 형들은 2명이잖아! 다구리 까면 이길 수 있어!" 라고 생각했을 때, 내 친구들은 이미 운동회 날 달리기 시합에서 흠모하던 여학생이 응원할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100m 쯤 멀어져가고 있었다. 평소에 축구 하던 새X들이라 그런지 정말 잘도 뛰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한 놈이 남아있었다. 달리기가 느린 녀석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의리있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우리 둘은 그 형들한테 아파트단지 옆 풀밭으로 끌려갔다. 어쨌든 항구는 아니니 목숨은 건졌구나 싶었다.
핑크 형이 말했다. "야, 돈 있냐?" 마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요즘 너답지 않아..", "나 다운 게 뭔데?" 이런 귀에 박힌 대사를 하는 것처럼 뻔한 대사였다. 아 깜빡하고 이제서야 서술한다. 난 그날 돈이 없었다. 같이 끌려온 내 친구도 없었다.
그 후로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 우린 어떻게 풀려났다. (나랑 내 친구랑 싸워보라는 둥, 서로 한대씩 때려보라는 둥 레알 변태 같은 소리만 했다.) 어쨌든 300m 쯤 가니 도망갔던 친구들이 있었다. 우린 다시 사이좋게 집에 걸어갔다. 꼭 위험할 때 옆에 있어줘야 친구인가? 그런게 어디있나.
다만, 그 중 4명은 지금 전혀 연락이 닿지 않지만 나와 같이 와준 친구는 지금도 내 베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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