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병 편지를 생각하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종종 타로점을 본다. 내가 고른 타로카드 몇 장으로 가까운 미래를 점친다든가,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든가 하는 것들 사실 믿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주 가끔 어디에도 마음 둘 데 없을 때 애정, 궁합, 진로, 직업, 결혼, 이사, 등 인생의 대소사를 한데 모아 놓은 듯한 타로점 집의 간판에 눈길이 가곤 한다. 인생의 중요한 지점들, 거기에다 ‘적중’이라는 한 단어. 발걸음이 또 멈추고 말았다.
퇴사 이후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또 다시 마음이 답답해졌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찾아가면서 잘해 나갈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던 시기는 진즉에 지나고 말았다. 그리고 슬쩍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퇴직금을 모두 까먹을 때까지는 돈 벌 생각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며 인생의 모든 걱정 같은 게 한꺼번에 찾아온 듯한 느낌이다.
나는 애초부터 독립적인 인간이 못 되기 때문에 늘 누군가에게 기대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물어보곤 했다. 그렇다고 팔랑귀는 또 못 된다는 게 내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렇게 할까요, 저건 어떨까요, 실컷 물어보고는 내가 원하는 답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또 얼마나 나밖에 모르는지, ‘저기, 다른 것 고려하지 말고 이것에 대해서만 말씀해 주세요.’라는 말을 몇 번쯤 참았던 적이 있다. 내게 소중한 시간을 내어 준 사람들에게 말이다.
타로카드는 단 하나의 주제에 대한 답만을 해 준다. ‘너 지금 그럴 상황 아니잖아, 얼른 자리 잡을 생각 해야지, 네 나이가 몇인데, 남자친구랑은 어쩔 건데, 결혼은 할 거니, 부모님은 뭐라시니……’ 수많은 말들이 생략된다. 직업이면 직업, 애정이면 애정이다. 아무것도 더 묻지 않고 다른 상황 따윈 생략돼 버린다. 모든 생각이, 그리고 삶이, 시간이 그렇게 깔끔하게 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처음 가 보는 타로점 집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처음 맡아 본 향내에 다시 나갈까 주저했다. 그 향이 뭔가 현실 세계와는 다른 세계로 들어갔다는 표지처럼 느껴져 잠깐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아저씨와 눈이 이미 몇 번이고 마주쳤기 때문에, 그리고 목이 말라 정수기 물도 마셨기 때문에 조용히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내 앞사람은 사주를 보았는데 그걸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태어난 때와 이름이 인생에서 그렇게 큰 점지일 수 있는지, 사주를 보는 사람은 기혼자인 것 같았는데 인생에 다른 남자가 들어오는지 뭐 이런 것들을 물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었지만, 손으로는 핸드폰을 만지는 체했다.
내 차례가 되어 ‘직업’이란 단어를 골랐다. 아저씨가 먼저 내 상황을 물었다. 카드를 선택하기 전에 직업과 관련해 내가 처한 상황을 말하라니. 어쩐지 불공평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어느새 술술 이야길 하고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사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 제법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꿈인데 감히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조차 해 오지 못했다.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취업과 관련 있는 과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 그 길로 가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 그 세계에도 진입하지 못했다. 그러다 ‘회사원’이 되어 아주 바쁘게 지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니까 허무해졌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물론 돈을 벌고 있었다. 동년배 친구들보다 훨씬 적게 벌긴 했지만 그래도 돈을 벌고 있었다. 패션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고 여행도 몇 번 다니지 않아서 적은 돈으로도 살 만했다. 그런데 내가 뭘 하고 있는지 회의감이 드는 순간, 벌이에 대해서도 불만이 생겼다. 그리고 스스로 질문했다.
네가 하고 싶은 게 뭐야? 뒤늦은 질문이었다. 친구들은 이미 직업적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히 만들었거나 아니면 육아라는 미지의 세계로 진입했거나 그러고 있었다. 큰 고민 없이 퇴사했다. 어정쩡한 나이이고 웬만한 직장을 다시 구하기 어려울 거란 걸 알면서도. 그러고 책을 읽어 보겠다고 글을 써 보겠다고 앉아 있었다. 그동안 힘들게 일했으니 여행이라도 다녀오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여행하고 싶었던 게, 쉬고 싶었던 게 아니고 다른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더 많이 읽고 쓰는 삶이랄까. 내겐 너무 거창한 무언가이긴 하지만.
다른 일을 해 보고 싶어서 얼마 전에 퇴사했어요.
어떤 일이요?
아... 글 쓰는 일이요.
작가요?
네.
그리고 나는 시선을 테이블에 고정시켰다. 대단한 비밀이라도 들킨 것마냥. 감히 가당찮은 꿈을 꾸기라도 한 것마냥 쪼그라들었다. 아저씨는 먼저 카드 두 장을 고르라고 했다. 리본이라고 할지, 줄이라고 할지가 나름대로 질서 있게 엉켜 있는 그림 두 장이 나왔다. 아저씨는, 카드가 말하는 대로만 말할 뿐이란 말을 먼저 했다.
포기하세요. 잘 안된대요. 포기하세요. 블라블라.
포기하면 편할 거라고 했다. 뭘 안다고? 물론 맞는 말일지도 모르지. 취미로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돈은 다른 일로 벌면서 하고 싶은 걸 할 수도 있다고. 그리고 두 번째로 카드를 두 장 골랐다.
지금 붕붕 떠 있네요? 간절히 원하는 일이라고 나오네요.
음. 내가 간절히 원하기는 하는 건가. 붕붕 떠 있는 건 맞는 것 같았다. 어떠한 소속도 없이 온종일을 내 맘대로 보내며 붕붕 뜨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저씨는 난처해 했다. 자신 앞에 있는 사람이 잘 되지도 않을 일을 원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저씨는 마지막으로 카드 한 장을 더 고르라고 했다. 한 카드를 고르려다 말고 그 옆에 있는 것을 골라 밀었다.
유리병 편지. 카드엔 유리병 편지가 그려져 있었다. 코르크 마개로 막은 유리병 안에 흰색 종이게 둘둘 말려 있는 그 그림, ‘유리병 편지’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해 보세요. 계속 해 보세요. 그런데 지금 당장 잘될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아직 열리지 않은 병 속에 내 글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포기하라고 해 놓고는, 오래 기다려 보라고? 모든 게 내게 달렸다는 뜻이겠거니 하고 웃었다. 물론 그림이 그려져 있는 카드 몇 장으로 내 운이나 심리를 엿본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으나, 난 그걸 위해 비용을 치렀다. 그렇게 하면서 내가 어떤 상태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더 들여다보고 싶었나 보다.
마지막 카드 한 장을 고르고 아저씨가 그 카드를 뒤집을 때, 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 혹시라도 한눈에 봐도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좌절한 사람이라든지 무시무시한 무기 같은 걸 들고 있는 사람이나 괴물이 나오면 어떡하지 고민했다. 만약 그런 그림이 나왔다면, 이깟 타로점 같은 건 믿을 게 못 된다고 허탈하게 웃으며 잊어버렸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유리병 편지 그림이 나온 것이다. 안도하는 내 모습을 안도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내 모습에 관해 조금 더 그려 보았다. 그리고 그건 뭐가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란 걸 알았다. 그것보단, 어떻게 살지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것. 그런 시간을 보내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임을 깨달았다.
유리병에 들어 있는 둘둘 말린 종이. 편지인지 일기인지, 코르크 마개로 봉인된 그 이미지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해 두고 싶어서 ‘유리병 편지’라고 검색해 보니, 꽤 많은 이미지가 나왔다. 그중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사진 하나를 배경화면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그 단어로 검색된 게시글들을 보았다. 샤이니 종현이 여러 회 진행했던 콘서트 이름이 유리병 편지였다는 것도 알게 됐다. 팬이라며 좋아한 적은 없었지만, 가끔 퇴근길에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를 들으며 위로받았던 날들이 있었는데 난 해 준 게 아무것도 없어서 미안해졌다.
그리고 2013년의 기사 하나를 읽었다. 107년 된 유리병 편지 발견. 캐나다의 한 해변에서 발견됐다고 했다. 글을 쓴 사람은 2013년에는 이미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글의 내용이 궁금해 더 검색을 해 보았는데, 어떤 내용인지는 알 수 없었다. 대신 그 유리병이 바다를 떠다니며 보냈을 시간을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 파도에 부딪히면서 때론 다른 존재를 만나기도 하면서 흘러온 시간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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