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환전담
나는 지금 DJ. DOC의 나의 성공담이란 노랠 떠올리고 있다. 그땐 디제이 덕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디제이 덕은 디제이 디오씨가 되어 있었다. 나의 성공담이 수록된 디제이 덕 3집은 내가 처음으로 가져 본 음반이었다. 내가 디제이 덕을 좋아하는 걸 알았던 아빠가 어느 날 선물처럼 테이프를 사 오셨다. 그때만 해도 어리기도 했고 음반이란 게 어떤 개념인지 잘 몰랐었는데 아빠가 사 오신 테이프로 온종일 디제이 덕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마냥 좋았다. 나는, 그녀의 속눈썹은 길다, 라는 노래를 정말 좋아했었다. 쪼끄마한 게 ‘그렇게 사랑이 깊어 갈수록 난 괴로워져 갔다. 군대, 안정된 직장.’ 이런 가사를 이해한다는 듯 슬픈 표정으로 따라 부르곤 했었는데.
나의 성공담은, 큰바위 얼굴이던 내가 한 사람을 만나 인생에 자신감이 생겼다, 같은 주제를 지닌 밝고 경쾌한 노래다. 나의 첫 환전 이야기를 쓰려는데 갑자기 이 노래가 떠올랐다. 왜일까. 고작 얼마 환전했다고 성공담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좀 거시기 하지만. 얼마 되지 않은 친구분들께 첫 환전 사실을 알리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왠지 환전 후기를 올려야 진정한 스티미언이 될 것 같은 그런 강박 관념이 있었나 보다.
각설하고, 오늘 약 5만6천 원 정도를 환전했다. 7.33 스팀달러를 0.047이더리움으로 바꾼 후 한화로 환전한 게 5만6천 원 정도가 된다. 스팀달러를 이더리움으로 바꾼 건 그제인데 이더리움 시세가 계속 떨어져(내 총 자산에서는 몇백 원이나 1~2천 원이 왔다 갔다 할 뿐이었지만) 노심초사하고 있다가 오늘에서야 시세가 조금 올라 환전했다. 시세는 계속 오르는 중인 것 같았는데 더 이상 신경 쓰기 싫었다.
생전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얼떨떨했다. 먼저 내가 가진 이더리움을 팔아야 했는데 그걸 생략하고 지갑에서 출금을 하려니 출금됐다가 다시 그 지갑으로 입금이 되는 걸 몇 번이나 반복했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충분히 다른 스티미언들의 글을 참고했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해 보니 쉽지 않았다.
여차여차 총 3일이 걸린 셈이다. 정말 내 계좌로, 내게 없었던 돈이 입금됐다. 첫 환전을 기념하기 위해 이 돈이 여느 때처럼 숫자 몇 개가 되어 생활비로 쓰이지 않도록, 한꺼번에 뭔가를 샀다.
책이다. 스팀잇을 처음 시작하면서 책에 관련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었고 정말 몇 편의 글을 썼다. 그리고 읽고 쓰는 걸 사랑하는 사람들의 블로그를 들락날락거리며 짧은 기간 많이도 배웠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책을 샀다. 또다시 내 스팀잇 생활(?)에 투자한 것이라고 여기고 싶다. 꼭 네 권의 책을 살 수 있었다. 내가 산 책 목록을 적어 본다.
- 작가 수업, 도러시아 브랜디
이 책은 님의 소설 작법서 추천 글(https://steemit.com/kr/@outis410/64wfzz)을 보고 읽어 봐야겠다며 생각만 하고 있던 책이다. 소설에 관심이 많고 또 늘 쓰고 싶다고 생각해 왔지만, 정작 제대로 된 작법서를 읽어 본 적이 없었는데 우티스님의 길잡이를 통해 하나씩 읽어 가려고 한다. 소설을 쓰게 되든 그렇지 않든 글 쓰는 일에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 인생은 뜨겁게, 버트란드 러셀
버트란드 러셀의 자서전이다. 올해 러셀의 전작 독서를 해 보자고 마음먹었는데, 워낙 저서가 많아서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읽고 있다. 자서전을 먼저 읽는 게 전작 독서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먼저 주문했다. 주문한 책은 사회평론에서 2014년에 나온 것인데 이미 2003년에 ‘러셀 자서전’이란 이름으로 상, 하 두 권의 책이 나왔었다. 읽기 어려울 것 같아서 ‘인생은 뜨겁게’를 골랐다. 러셀 자서전에서 서간문을 뺐다고 한다.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 당신의 아주 먼 섬, 정미경
10년 전쯤, 손에 꼽을 만큼 좋아하는 작가였다. 소설을 낼 때마다 사서 책장 한쪽에 모아 놓았는데 언제부턴가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한때 소설이라는 장르를 더는 좋아하지 않았었고 그녀의 유려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에도 끌리지 않았다. 그렇게 잊고 지냈는데 지난 추석, 오랜만에 서점에 가서 책 구경을 하며 그녀가 <가수는 입을 다무네>라는 소설을 냈다는 걸 알았다. 띠지에는 이것이 그녀의 유작이란 설명이 달려 있었다. 가슴이 먹먹해져서 한참 그 책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그리고 책을 사 읽었다. 잊고 지냈던 어떤 세계가 내게로 한 발짝 다가온 것 같았다. 그 책이 정미경 작가의 마지막 소설일 줄 알았는데 얼마 전 온라인 서점에서 ‘당신의 아주 먼 섬’이란 이름을 보았다. 반갑기만 해 장바구니에 고이 모셔놨었다.
- 2018 이상문학상 작품집
신입생 시절, 멋있었던 교수님 연구실에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주르륵 꽂혀 있는 걸 보고 저걸 사야겠다며 무작정 몇 권씩을 샀던 기억이 있다. 대화에 끼고 싶어서 꾸역꾸역 매해 사 오고 있다. 온라인 서점을 배회하며 2018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나왔다는 걸 알았다. 진지하게 읽어 볼 계획이다.
스팀잇이 뭔지도 모르고 가입했다. 한동안 이곳에는 가상화폐를 주제로 한 글들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글을 올리자 스팀잇의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다른 주제가 아닌 ‘글쓰기’를 주제로 고민하며 자신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보고 나는 이곳에서 좀 더 진지한 태도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태도로 글을 쓰면 많은 사람이 공감해 주었다. 그게 얼마나 따뜻한 일인지 요즘 새삼 실감하고 있다.
매일 글을 써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물론 그렇게 하지 못했다. 글을 쓴다는 게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었으며 내게 그렇게 글감이 많지도 않았다. 때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해, 그냥 글을 쓰고 싶을 때 쓰고 올리고 싶을 때 올리자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다. 대신, 이곳에서 오래 글을 써 보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진지한 자세로 읽기로 했다. 평소 많은 걸 읽고 또 그렇기에 어떤 글들은 빠르게 읽어가다가 그만두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스팀잇이 내 그런 태도를 없애고 있다. 나와 다른 사람들,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글을 읽는 게 즐겁고 또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환전을 계기로 '스팀잇에서 읽고 쓰는 행위'에 대해 이야기해 봤다. 더 이야기할 것이 많이 남아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앞으로 읽고 싶은 책을 사는 것 정도를 스팀잇 활동으로 감당(?)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자주 환전을 하진 않을 생각이지만. 환전해서 책을 산다면 후기, 감상 같은 글을 남겨 보기로 한다.
이 정도면 나의 성공담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살면서 기억할 만한 성공을 해 본 적이 없는지라 자랑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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