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릴레이] 돌아가서 쓰는 일기
님의 지목으로 추억 릴레이에 소환되었습니다.
(시작 : @eunhaesarang님의 글, @wanderingship 님의 추억)
무슨 추억을 이야기 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여행도 아니고, 저 먼 옛날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냥 아버지와의 자전거를 탄 소소한 이야기 입니다!
2017년 10월 4일 추석.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할머니를 뵈러 왔다.
할머니 댁이 새로 지어진 지는 몇 년 됐다. 한 5년은 넘은 것 같다.
원래는 화장실도 집 밖에 있는 푸세식이었고, 입구도 창문 달려있는 철문이었는데
그 창문 마저도 다 깨져서 어렸을 때에는 좀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집에서 한복으로 맞춰입고 다 같이 행복하게 웃었던 것이 가끔씩은 그립기도 하다.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가 없어서 더 그런 것 같다..
지금 새로 지어진 할머니 댁은 엄청 좋다.
이층짜리 단독 주택인데, 마당도 예쁘게 꾸며놓고 아주 그냥 별장이다 ㅎㅎ
그리고 얼마 전엔 삼촌이 집 옆 차고 위에 테라스 같은 것을 직접 만드셨는데
거기서 고기를 구워 먹다가 친구에게 자랑을 하려고 사진을 찍었다.
외할머니가 담가주신 복분자주를 할머니 댁에서 마시다니,
빨리 외할머니도 보고싶다.
어쨌든 숙모와 함께 짠! 을 했다.
오늘은 날씨가 좀 갰는데 어제는 비가 추적추적 와서 좀 추웠다.
가디건이라도 입고 나올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일찍 눈이 떠져서 친척들이랑 거실에 모여
간단하게 아침을 먹으니 심심해져서 아빠랑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숙모가 면 단위로 열리는 행사에서 추첨으로 탄 자전거라고,
요새 운동 삼아 하루에 네 시간씩 타기도 한다고..
좋아하시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ㅎㅎ
어른께 쓰는 말은 아니지만, 숙모는..귀여우시다!
어쨌든 나는 길을 잘 몰라 아빠가 앞장서고, 나는 그냥 졸졸 따라가기만 했다.
그런데 구름이 어찌나 예쁘고, 바람이 살랑살랑 불던지 너무 좋았다.
음악만 있으면 딱일 거 같아서
그래서 아이유가 새로 낸 앨범을 전곡듣기 해 놓고
카메라를 켰다. 찰칵!
음 ..
"아빠가 언제 이렇게 작아졌지?"
아빠는 원래 엄격하고 무섭고 가부장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빠에게 뭘 부탁하거나, 사달라고 말하고 싶으면
한참 생각했다. 안 된다고 할까봐.
아무리 생각해봐도 갖고 싶으면 말했다.
그렇게 커다랗고 무서운 아버지였는데, 언제 저렇게 작아지셨지..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페달을 밟는 아빠의 다리가 좀 ..
얇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손은 휴대폰을 잡고 한 손엔 자전거 손잡이를 잡고
사진을 찍으면서 가다보니까 너무 뒤떨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사진 찍는 것을 잠시 멈추고 열심히 아빠를 따라갔다.
아빠는 설명을 해주셨다.
"이 자전거 도로를 쭉 가다보면 어디에 가고,
남지 유채꽃 축제가 어떻고 ~~"
아빠는 옛날에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갔다.
좀 오래 걸렸는데 학교가 멀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마치고 오면 소를 몰고 밭에 나가서
해 질 때까지 일을 했다.
그리고 또랑이나 강에 가서 몸 담그고 노는 게
그게 일상이었다.
많이 들었던 말이었는데, 직접 눈으로 보면서 직접 느끼면서 들으니까
또 느낌이 달랐다.
저 멀리 물 건너서 남지 유채꽃밭이 보였다.
계속 갈 수도 있었는데 너무 멀리 온 거 같아서 돌아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까봐
이쯤에서 아쉽게 끝내기로 했다.
내가 사진을 찍으면서 온 걸 아는 아버지는,
"멀리 가봐. 더 멀리, 좀만 더 멀리."
"아빠가 자전거 타면서 갈테니가 한번 찍어봐."
그렇게 설정 샷을 찍었다 ㅎㅎ
아직 오전 10시 밖에 안 됐는데 뭔가 오후 4시 같았다.
진짜로 오후 4시가 되기 전에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것치 머믄들 속초자 검을소냐
아마도 것 희고 속 검을 손 너뿐인가 하노라
아버지는 이 시를 자꾸만 읊으셨다. 나보고도 따라하라고 했다.
의미도 알아맞춰보라고 하셨다.
나도 이 시조를 배워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냥 아버지한테 한 번 더 들었다.
또 다르게 느껴졌다.
어렸을 때 이런 시를 외우라고 배워서 잊혀지지가 않는다
얼마나 맞으면서 배웠던지 ..
라고 하셨다.
아빠의 옛을 50% 들은 것 같다.
듣기만 한 거지, 이해는 10%도 못 했을 거다.
먹고 싶으면 시켜 먹는 치킨인데,
옛날엔 치킨 그런 게 없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닭 백숙을 먹는 날은 집안의 좋은 일이 있는 날이었다고 하셨다.
들으면서 신기했다.
한 세대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덤덤하게 받아들이시는 아버지가 신기했다.
나도 이렇게 아버지처럼 덤덤하게 내 어릴 적을 말하는 날이 오겠지.
"어, 나 어릴 때는 수업을 들으러 학교라는 곳을 갔단다."
"와이파이라는 게 안 잡히면 인터넷을 못 했지."
라고 말하면 "에엑 진짜요?" ㅎㅎ
집에 가서 밥 먹고 외할머니 댁으로 출발했다.
별 건 없지만 많은 생각이 들었던 오전이었다.
오늘의 일기 끝.
"옛날에는 지폐라는 게 있었어. 코인이나 가상화폐가 아니라."
ㅋㅋㅋㅋ 스팀잇 만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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