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잡기 20-4] 13년간 말을 걸어오던 책, 등대(주강현)
가족들의 비난을 듣는 것 중에 하나가 책 욕심이다.
책을 많이 사들이는데, 그 중에는 안 읽는 책도 많고 더 문제는 쓸데없는 책자도 버리지 못하고 끌어 안고 있다는 것.
나도 심각성을 깨닫고 더 이상 안 볼 책들은 상자에 담아 고물상에 넘기기도 하는데, 돌아보면 그 책 중 나중에 소중한 자료가 될 것만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니 이 정도면 '책 분리불안증'.
책에 대한 이런 애착은 오래 전 어렸을 때 생성된 것이다. 집에 읽을 만한 책이 하나도 없었고, 십리는 걸어야 하는 문구점 겸 서점에서는 참고서만 다루었다. 그나마 학교 도서실이 유일한 책 보급처였는데 방학이 되면 학교는 문이 굳게 닫히고 만다.
동네 다른 집에서 빌려온 책을 다 읽고 친구에게 넘긴다. 그 친구는 또 다른 친구에게 전달하고. 어느 때 보면 한 권의 책이 반 전체를 돌았다. 모든 게 넉넉치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 때 우린 책을 통해 저 먼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우리와 다른 삶에 고개를 갸웃했다. 책은 깡촌의 별빛이었다. 그러니 책을 어찌 아끼지 않겠는가.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는 시간이 부족했다. 더러 열외되어 자그마치 13년 동안 책장에 꽂혀서 나 좀 봐 줘, 하게 만들었으니 미안하다, 등대.
등대가 국내에 처음 설치된 것이 1903년인데 일본인 이시바시 아야히코의 작품이라고 한다. 영국에서 유학한 그는 국내 최초인 팔미도 등대를 비롯한 1900년대 초반의 거의 모든 등대를 제작했다고 한다. 물론 한반도 침략을 위한 발판이었다.
저자가 지도에 표기해 준 대로 모두 인터넷으로 확인해 봤다. 등대에 다녀온 후기들이 많다. 섬을 종주하고 등대를 배경삼아 사진을 찍은 것들이다. 누구도 등대원들의 외로운 삶이나 섬을 휩쓸고 간 역사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듯 하다.
어쨌든....
소청도 등대, 연평도 등대, 선미도 등대, 팔미도 등대, 웅도 등대, 부도 등대, 격렬비도 등대, 어청도 등대, 말도 등대, 목포구 등대, 홍도 등대, 가거도 등대, 가사도 등대, 죽도 등대, 하조도 등대.(서해)
당사도 등대, 추자도 등대, 산지 등대, 마라도 등대, 우도 등대, 거문도 등대, 백야도 등대, 소리도 등대, 오동도 등대, 소매물도 등대, 서이말 등대, 홍도 등대, 가덕도 등대, 오륙도 등대, 영도 등대.(남해)
간절곶 등대, 울기 등대, 송대말 등대, 호미곶 등대, 후포 등대, 죽변 등대, 독도 등대, 행남 등대, 묵호 등대, 주문진 등대, 태하 등대, 속초 등대, 거진 등대, 대진 등대.(동해)
등대원은 등대지기라는 단어를 싫어한다고 한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등대를 지키기 일 수여서 '도 닦는 심정'으로 등대를 지킨다. 많은 문인들이 등대를 소재로 낭만의 꽃을 피우지만 정작 등대는 거센 파도와 싸우는 처절한 싸움의 현장이다(82).
등대가 불을 밝힌지 이제 1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왜색을 뿌리 뽑겠다고 기존의 등대를 철거하고 현대식으로 재건축하는 것은 잘못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하는데, 침략의 역사도 역사이고 그 유물도 우리의 교육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두툼한 책을(사실 사진이 좋아서 금방 넘어 간다.) 덮자니 오랜 숙제를 마친 느낌이다. 매우 소중한 기록이다. 직접 찾아가서 인터뷰하고 사진 찍고 주변을 자세히 돌아보며 그 섬에 내려오는 전설과 오래된 역사를 헤집어 기록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또한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다.
늦었지만 저자의 그 오랜 발품과 현장 조사의 노고를 치하한다.
등대 / 주강현 / 2007 / 생각의나무 / 27,000원 / 인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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