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으로 갈린 새박사 부자
1970년 10월 3일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나라로 간 새 박사
조류학자 한 분을 취재한 적이 있다. 무인도의 벼랑에서 국내에서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새의 둥지와 알을 발견했을 때, “만세를 부르다가 줄을 놓쳐 죽을 뻔했다.”고 웃던 그분은 1년에 몇 달은 집에 들어가지 않고 새를 찾아 헤매고 계셨다. “왜 그렇게 새를 좋아하세요?” 하니 우선은 팔자소관을 얘기하셨고 두번째로는 ‘자유로움’을 들었다. 하늘을 나는 새들의 자유로움, 그 거침없음이 좋다는 것이다. 시베리아부터 오세아니아까지를 넘나드는 그 드넓은 날개짓이 맘에 든다는 것이다.
“호랑이만 해도 휴전선을 못넘잖아요. 고속도로 하나만 나도 짐승들은 길이 끊겨요. 하지만 새는 다르잖아요? ” 그럴싸했다. 특히 1970년 10월 3일 북한에서 세상을 떠난 국내 1세대 조류학자 원홍구 박사에게도 그 이유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원홍구 박사는 해방 이전 조선 조류 연구의 선구자이자 유일하다시피 한 존재였다. 그 아들들도 부전자전, 장남 병휘는 만주와 조선의 쥐 연구의 대가였고, 아버지의 뒤를 항시 따라다니며 새에 관심을 보이던 막내 병오는 원산농업대학을 졸업하며 아버지의 후학이 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쟁이 이 가족을 갈라 놓았다. 아버지와 딸들은 북한에 남았고 아들들은 남쪽에서 터를 잡게 된다.
하지만 원씨 가족은 운이 좋았다. 양쪽 다 국가 최고 지도부의 신뢰를 받으며 안정적인 연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북한의 김일성은 주택과 승용차를 제공하는 등 최상의 대우를 했고, 남쪽의 아들 원병오는 군 복무시 박정희의 부관이 됐던 인연으로 이후 박정희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행운을 누린 것이다. 각설하고.
아버지처럼 조류학자가 된 아들 원병오 교수는 1963년 쇠찌르레기라는 철새에 가락지(알루미늄 링)를 끼워 날려 보낸다. 그 이동경로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 가락지가 국산이 없었던지라 아들 원 박사는 일본 농림성 마크가 찍힌 가락지를 구해 쇠찌르레기의 발목에 채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새가 2년 뒤 평양 만수대에서 발견된다. 당시 북한 생물학연구소장은 가락지를 보고 놀란다.
“아니 쇠찌르레기는 일본까지는 가지 않는데 이거 어캐 된 거이가?”
북한은 일본 동경 소재 국제조류보호연맹 아시아 본부에 이 기이한 발견에 대해 문의한다. 확인 결과 가락지를 단 사람은 서울의 원병오 교수였다. 그런데 북한쪽에서 다시 한 번 문의가 온다. “한자는 어캐 쓴답니까.” 북한 생물학연구소장의 각별한 관심에는 이유가 있었다. 소장의 이름이 원홍구였기 때문이다. 기이한 쇠찌르레기의 내막은 곧 밝혀진다. 남쪽의 아들이 날려 보낸 쇠찌르레기가 자유롭게 휴전선을 넘어 2년 넘게 노닐다가 아버지의 손에 들어간 것이다. 15년 동안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던 자식이 자신의 뒤를 잇는 조류학자가 되어 가락지를 끼워 보낸 새의 지저귐을 들으면서 노학자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아버지와 아들은 조류학자들의 국제적 교류 과정에서 생사를 확인하고 서신도 교환한다. 그러나 그 이상은 감히 꿈꾸기 어려웠다. 올림픽이라는 평화의 무대에서도 남한의 아버지와 북한의 육상 선수 딸이 단 몇 분을 만나고 갈라진 것이 그 1년 전이었고, 김신조를 위시한 북한의 124군 부대가 청와대를 ‘까러’ 온 것이 그로부터도 3년 뒤였다. 그 엄혹하고 칼날같던 냉전의 땅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새들 뿐이었다.
평양 표식의 가락지를 단 새가 서울에서 발견됐고 아들이 날려보낸 새들은 북한 산야를 아무렇지도 않게 누볐지만 정작 새들을 함께 연구했던 부자는 끝내 상봉하지 못한다. 1970년 10월 3일 아버지 원홍구 박사가 어릴 적 자신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새 이름을 외우던 막내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눈을 감은 것이다. 이 부고조차 일본 학자의 전언을 통해 확인해야 했던 아들은 북쪽을 향해 엎드려 대성통곡한다.
그로부터 20년 뒤 고 원홍구 박사의 기일인 1990년 10월 3일. 같은 분단국가였던 독일의 통일이 선언된다. 그 찢어질 듯한 환호와 열광의 도가니 앞에서 아버지의 20주기를 맞은 노학자가 어떤 마음이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새 발목에 맨 가락지로 아버지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고 평양이 새겨진 가락지를 찾으며 아버지의 흔적에 가슴 떨어야 했던 날들이 딱다구리의 부리가 되어 그 폐부를 쪼아 댔을 것이다. 새들만도 못한 분단국가의 국민된 처지가 검독수리의 발톱처럼 눈가를 후벼 팠을 것이다.
서두에 언급한 조류학자는 촬영후 술자리에서 노래 한 곡을 청하는 내게 한 노래를 불렀 주었다. 오래 전에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는 새에 대한 노래. 동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슬프고 처량한 노래. 그 노래를 들으며 술자리는 꺼지듯 가라앉았었다. 어쩐지 그 노래가 원병오 박사의 마음을 담은 것 같아 옮겨 둔다. “따오기”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따옥 따옥 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 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드메이뇨 / 내 아버지 (원래는 어머니) 가신 나라 해 돋는 나라·
잡힐 듯이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따옥 따옥 따옥 소리 구슬픈 소리 / 날아가면 가는 곳이 어드메이뇨 / 내 아버지 가신 나라 달 돋는 나라
약한 듯이 강한 듯이 또 연한 듯이 / 따옥 따옥 따옥 소리 적막한 소리 / 흘러가면 가는 곳이 어드메이뇨 / 내 아버지 가신 나라 별 돋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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