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lestelle avatar

금주의 끝

mylifeinseoul

Published: 14 Jun 2018 › Updated: 14 Jun 2018금주의 끝

금주의 끝

#1

언젠가 한번 얘기한 것도 같은데, 나는 지난 몇 달동안 금주를 했다. 성인이 되고나서 술을 이렇게 오랫동안 안 마신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맨 처음 금주를 해야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스스로 가지기도 했다. 그런데 금주를 하면서 순간 순간 마시고 싶을 때도 있었으나, 큰 충동을 느낀 적은 없다. 나 스스로도 신기하면서도 뿌듯했다. 많은 모임에서 술을 따라놓고 마시는 척을 할 때도 있었으나, 그 또한 나의 탁월한 연기(!)로 잘 넘어갔다. 그래서인지 내가 몇달동안 술을 안 마시고 있다는 걸 가까운 지인 외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른다. 지인들이랑 만나서 술을 안 마시고도 재미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그렇게 뿌듯한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지난 주까지만해도.

#2

몇 주에 지인한테서 “너도 X (뮤직페스티벌) 가는거다” 라는 문자를 뜬금없이 받았다. 요새 시끄럽고 사람 많은 곳을 기피하는지라, “피곤해” 라고 답장하며 거절했다. 그런데 X 시작 며칠 전에 일본 친구가 자신도 가니까 같이 가서 놀자는거다. 외국에서 친구도 온다는데, 일이 이렇게까지 진행되면 가는게 인지상정이다. 무조건 칼퇴하고 잠실로 달려갔다. 음….. 역시 우리 사회는 참 좁다. 그 곳에서 내가 아는 사람을 최소한 30명은 본 것 같다. 다들 이제 나이먹어서 힘들어서 못 놀겠다고 하면서 이런 자리엔 꼬박꼬박 나오는 걸 보면 참 대단들하다 (나 포함). 쿵쾅거리는 리듬에 몸을 맡기고 소파에 앉으니 테이블 앞에 놓인 샴페인과 맥주, 보드카들이 보였다. 날도 더워지기 시작하는데 아이스버킷에서 차갑게 칠링되는 샴페인 한 잔을 마시면 더위가 싹 가실 것 같았다.

'딱 한 잔만 마실까?'

#3

뭐든지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은 쉽다. 오랜만에 마신 샴페인은 참 맛이 없었다. 너무 물같이 밍숭맹숭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맹물 같아서 벌컥벌컥 잘 들어갔다 (….) 마시다보니 한 잔을 금방 비웠고, 저절로 내 손은 또 한 잔을 따르고 있었다. 그렇게 두 잔을 마시고났더니 탄력을 받았다. 친구들이 권하는 보드카 샷도 하나 마시고, 맥주도 1캔 먹었다 …. 그래도 확실히 금주할 때와는 다른 흥겨움이 느껴졌다. 아, 이래서 우리가 술을 마시는구나. 술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다.

#4

한창 즐겁게 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우리 테이블에 와서는 내 일행한테 반갑게 인사하고는 몇 분 정도를 근황토크를 했다. 꽤 친한 사이처럼 굴었다. 그런데 내 일행 (A) 의 얼굴이 똥 씹은 얼굴인거다. 거의 대꾸도 안하고 무시하고 있었다. 그 사람 (B) 가 자기 테이블에 돌아가고 나서 A 가 설명하길 - B 하고는 몇 년전에 자동차 동호회에서 만났는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기가 얼마나 잘나가는지 떠벌렸다고 한다. 그렇지만 많은 남자들이 기싸움하는 과정에서 허세가 들어가기도 마련이기 때문에, 내 지인 A는 그렇게 신경쓰지는 않았다고 한다. 자랑질이 심하네 - 정도로만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1-2달 정도는 주말마다 같이 서킷에 가서 놀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정도 친해졌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B가 자꾸만 투자를 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 지인 A는 관심없다고 말해도, 이것 저것 온갖 걸 들이밀었다고 한다. 귀찮게 생각할 무렵, 친구로부터 B 에 관해서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동안 B 는 자기가 디자인/인테리어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A 에게 말했는데, 또다른 자동차 동호회에 가서는 부모님이 갖고 있는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로 놀고먹는 한량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그 어느 쪽도 진실같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후에 A 는 동호회에 안나가서 B 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로부터 1년 후, 동호회 회원으로부터 B 의 그간 말과 행동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고 한다. 디자인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도 거짓, 부모님이 건물을 갖고 있다는 것도 거짓, 심지어 사는 곳이라고 말했던 장소도 거짓이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차는 좋은 걸 타고다니면서 자동차동호회 활동을 하며 그곳의 회원 여럿에게 사기를 쳤다고 한다.

#5

A 는 그 소식 이후로 B 를 본 적이 없는데 X 에서 마주치니 세상이 참 좁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B 가 자신한테 와서 철면피 깔고 인사를 한 것도 B 의 테이블에 있는 B 일행한테 자기가 이렇게 아는 사람이 많다는 걸 과시하기 위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리고 B 는 경제적으로 매우 쪼들려서 하루 벌어 하루 살 정도라고 알고 있는데 X 에서 어떻게 테이블 잡고 노는지 궁금하다고도 했다. 그리고선 내린 결론은 “사기꾼/거짓말쟁이들은 어떻게든 자기 살 길을 찾나보다.” 였다. 지금도 B 는 한국 어딘가에서 자신의 신분을 거짓으로 꾸미고 살아가고 있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6

누구나 살면서 거짓말을 한다. 나도 매일 매일 한다. 별로 고맙지도 않은데 “고맙다” 는 말을 습관처럼 쓰기도 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사회적 교양을 갖춘 사람’ 이라는 가면을 쓴 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큰 거짓말을 하는 사람조차 자신의 신분/정체성을 깡그리 뒤집는 거짓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직업 같은 경우는 사회에서의 신분증과 같은데, 그 직업/회사를 거짓으로 꾸며내기란 보통 마음가짐으로 하기 어렵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건, 그렇게 쉽지 않은 큰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매우 많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거짓말을 눈치 채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넘어간다. 굳이 귀찮게 나서서 “너 거짓말 하고 있지?” 라고 말하지 않는다. 괜히 나섰다가 시간만 뺐기고 나에게 큰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니, 믿는 척 하면서 가만 놔둔다. 그 거짓말이 나에게 타격이 되지 않는 한, 좋은 게 좋은 거다 라는 생각으로 넘어간다. 나도 그런다.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믿는 척하면서 넘어간다. 그래서 누군가가 앞장 서서 거짓말을 지적해주는 게 대단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미래의 그 누군가에게 cheers !

#7

오랜만에 술을 마시고 노니까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자리에서 일찍 일어나서 집에 들어와 뻗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하루 종일 피곤에 쩔어있었다 (…..) 왠지 몸 체질이 술을 안 받는 체질도 변한 것 같다. 매우 슬퍼졌다.
‘금주의 끝’ 일기 끝.

#8

눈코틀새 없이 바쁘다는 이유로 스팀잇에 거의 일주일만에 들어왔다. 원래는 7번까지 써놓고 올리려고 했는데, 스팀잇의 황폐한 피드를 보고는 조금 더 쓴다. 어마어마하게 피드가 밀려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많이 밀리지 않은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오늘 하루 안에 반가운 분들의 모든 글에 방문하지는 못하겠지만 … 왜 이렇게 황폐해졌는지 이유를 찾아보니, 스팀이 곤두박칠쳐서 그런가보다. 2달 전 쯤에도 지금과 비슷한 현상을 겪었는데, 다시금 겪게 되었다. 이 현상을 두 번째 겪으면서 내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모든 것에는 인연이 있다.” 는 걸 깨닫게 되었다. 맨 처음 썰물현상을 겪었을 때는 사라진 사람들을 그리워하면서 속상해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특별히 슬퍼하지도, 속상해하지도 않는다. 스팀잇만이 놀이터가 아니고, 스팀잇만이 투자처가 아니니까. 내가 이 곳을 편하게 생각한다고 해도, 모든 사람들이 나같이 느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스팀잇과 자기 자신이 인연이 아니라고 느낀다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떠난 사람을 ‘하락장에서 버티지 못하는 유리멘탈’ 이라고 욕할 권리는 우리 중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리고 떠난 사람은 스팀 가격이 하락해서 떠난 게 아니라, 그저 이 곳이 불편해져서 떠났을수도 있다. 물론 그 떠난 사람이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라면 매우 아쉬울거다. 하지만 그 사람이 다른 곳에서 즐겁게 살아가기를 나는 진심으로 응원할거다. 물론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온다고 하면, 두 팔 벌려 환영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런 의미에서, Farewell for now, amigo !

진짜 끝 !

Fin.

Leave 금주의 끝 to:

Written by

Wanderlust, Avid Food lover, Art Fanatic

Read more #kr posts


Best Posts From celestelle

We have not curated any of mylifeinseoul's posts yet. But you can encourage our curation team to review posts by visiting them regularly and by referring other readers. Because we give priority to frequently read content.

More Posts From celestel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