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생, 블록체인업체에 취직하다 - (4) "그집 아들, 다단계 회사 다닌다면서요?"
전 직장에서 인연을 맺은 분들이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옮기니까 좋냐?'
네 좋아요... 라고 대답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업계에서 근무하는게 항상 해피하고 즐겁기만 한 건 아닙니다.
업종 자체가 예상치도 못한 속도로 빠르게 변하고, 여기에 적응해야 한다는 '속도차이'는 당연히 예상했지만 그 이외에도 블록체인 일을 하기 전에는 미쳐 몰랐던 일들도 툭툭 불거져 나오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일들일까요?
ㅇ"그집 아들 뭐해요?"
일단 저희 부모님은 제가 무슨일 하는지 살짝 아십니다. 암호화폐 업종에서 일한다는 거 까지는 아시지만, 빗썸이나 업비트 같은 거래소에서 일한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다른 어른들이 무슨일을 하냐고 물어보면 설명하기 곤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저 : "저 블록체인 관련된 일 합니다."
어른 : "그게 뭐여?"
저 : "저 비트코인..."
어른 : "아그거 말여? 그거 위험한거 아녀? 다 사기라고 유시민이 그러드만. 다단계 같은거여?"
저 : "아니 그게 아니고 블록체인은 차세대 보안의 핵심으로 (블라블라블라) "
어른 : "뭔소린지 모르겠구만.. 그니까 금융회사 다닌다는거여?"
저 : ....
IOST 재단에 합류한 후 하루에도 한번씩은 꼭 이런 대화를 하게 되는거 같습니다.
특히 직장과 연봉이 개인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묻는 사람이 많은 한국사회의 특성상,
처음보는 20대 후반, 30대 초반 젊은이들만 보면 자기자식(대체로 대기업인 경우가 많습니다. 안궁금해요.)이 어디 다니는지를 말하면서 제 직업을 묻는 무례한 어르신들을 만나면 난감합니다.
베지터의 전투력 측정기 같은거겠죠?
<근데 얘는 베지터 아니고 라데츠라고 하네요 하하>
ㅇ글로벌 팀과의 협업 (1) - 시차
제가 몸담고 있는 IOST 프로젝트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글로벌 프로젝트입니다. 싱가포르 외에도 미국과 중국, 일본, 베트남 등에 글로벌 팀이 나가있죠.
문제는 이들 팀들이 회의를 하고 업무를 수행하는데 지리적으로 너무 떨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 시간에 맞추어 일을 다 해놨는데, 글로벌 팀에서 업무 협조요청이 들어오면 어지간 하면 수행해 줄 수 밖에 없죠.
근데, 함정은 '시차'입니다. 한국 시간대에 맞추어 기본적인 업무 처리를 다 해놓아도, 한밤중에 가끔 글로벌 팀에서 업무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죠. 그쪽시간으로는 한낮이니까요.
특히 저처럼 일찍 잠자리에 드는 사람은(저는 10시~11시면 잡니다.. 새나라에 어른이) 잠자고 일어나면 이슈가 펑펑 터져있는 경우가 있어서 곤혹스러울 때가 아닙니다.
대형로펌의 M&A 변호사라는 직업이 엄청나게 멋있어 보이지만, 이쪽에서 근무하는 대학선배가 비슷한 이야기를 해준적이 있습니다.
'그거 글로벌 M&A 변호사라는거 멋져보이냐? 우리로선 죽을맛이야 임마. 국내 고객사한테 한국 시간대로도 전화오고, 글로벌 고객사한테 외국 시간대로 전화오고.'
이 이야기를 자주 떠올리는 요즘입니다.
ㅇ글로벌 팀과의 협업 (2) - 메신저 협업
글로벌 지부가 다수다 보니 당연히 대부분의 업무는 메신저를 통해 의사소통 하게 됩니다. IOST 재단의 경우 Wechat을 사용합니다.
가끔 다른 일 하느라고 집중하고 있으면 위챗 메시지가 수십통씩 쌓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건 약과구요...
위챗은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습니다
'오래된 메시지가 자동으로 사라집니다!'
특히 글로벌에서 공유해준 워드파일이 하루이틀 후면 사라지는 사태가 종종 발생하곤 합니다. 제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하루이틀 자리를 비웠는데, 글로벌에서 중요한 문서를 위챗을 통해 전송한 경우면 거의 멘붕이 오죠.
카톡이 불편하다 어쩌다 말이 많지만, 카톡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는 요즘입니다.
ㅇ용어의 과잉을 극복하라!
요즘들어서 인문계 출신이지만 IT 업계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계시는 홍보, 마케팅 선배님들이 정말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많이듭니다.
용어와 로직(논리)가 기존 업종과는 완전히 다른데다가, 새로운 개념과 용어가 거의 매일 생긴다고 보면 됩니다.
특히 ICO와 백서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일부 프로젝트들이 자신들의 독창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기존과 유사한 개념을 새로운 개념처럼 포장해서 내놓고 있습니다. 이런걸 다 공부할 때마다 죽을 맛이지요.
반대로 저는 홍보와 마케팅 관련 업무를 맡고 있으니, 일반인을 대상으로 이런 개념들을 쉽게, 더쉽게 설명하느라고 깊은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메이저리그 구단 시애틀 마리너스의 전설의 투수 제이미 모이어는 무려 20년가까이 고작 시속 130~140km (이건 KBO 기준으로 느린 편이죠) 속구로 롱런하면서 수많은 타자들의 삼진을 잡아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 기자가 그에게 어떻게 그렇게 느린 공을 던지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냐고 물어보자, 이런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느린공, 더느린공, 정말 느린공을 던질 수 있다' 라고요.
이 업종에서는 비슷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IT 업계 출신들도 단박에 알아듣기 힘든 용어를 '쉬운글, 더쉬운글, 정말로 쉬운글'로 풀어내는 능력이 있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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