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라니, '축전의 품격' 보여준 문재인 대통령
세계 대회나 올림픽과 같은 경기에서 메달을 따면 대통령은 축전을 보냅니다. 축전이라고 별다른 것은 없습니다. 축하한다. 잘했다는 말이 대부분입니다.
과거의 대통령 축전을 보면 '나라와 국민의 명예'라는 근대적인 사고방식이 담겨있습니다. 선수가 잘했지만, 그 모든 영광은 국가를 위한다는 목적이 강합니다. 선수를 하나의 부속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엿보입니다.
그런데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선수들에게 보내준 축전을 보면, 과거와는 전혀 다른 품격을 엿볼 수 있습니다. 문 대통령의 축전이 뭐가 다른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축전이 아니라 시(詩)와 같은 표현법'
글을 쓰고 사는 아이엠피터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상화 선수에게 보낸 축전을 보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그동안 흘린 땀방울과 오늘 흘린 눈물이 은메달로 하얗게 빚어져 빙판처럼 빛납니다'라는 문장은 마치 시와 같습니다. 이런 글은 과거의 축전에서는 상상도 못 할 표현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축전은 국가주의에서 벗어나 오로지 선수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있습니다. 선수가 국가를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명령조가 아닙니다. 선수의 아름다운 도전이 국민에게 기쁨과 가르침을 줬다는 축전이기보다는 감사의 편지 같습니다.
문 대통령의 축전에는 '그것만으로도 우리 국민들은 이상화 선수를 사랑합니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대통령의 축전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오다니, 파격에 가깝습니다.
'가족 이야기가 담겨 있는 축전'
축전을 받은 이상화 선수는 '언제나 세계 최고의 빙속여제'라는 말도 좋았겠지만, '오늘 처음 딸의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본 가족들'이라는 말에서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이상화 선수의 가족은 이 선수를 위해 모두 희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딸의 운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하실에서 봉제 일을 했고, 오빠는 재능 있는 동생을 위해 먼저 시작했던 스케이팅을 포기했습니다. 고등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했던 아버지는 고작 영상 등으로 딸의 경기를 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대통령의 축전 하나로 이상화 선수의 가족은 그간의 어려움이 생각났을 겁니다. 아마도 이상화 선수의 생일인 평창올림픽 폐회식(25일)에는 온 가족이 식사하며 서로의 손을 꼭 잡아줄 것 같습니다.
'경기를 다 봤나? 디테일한 축전은 처음이야'
대통령의 축전은 형식적입니다. '축하한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한 전보이기 때문입니다. (전보:전화 등이 보편화 되지 않던 시절에는 우체국에 가서 짧은 문장을 알려주면 도착지에서 전화로 받아 카드로 출력해서 전달했다)
통신망이 발달했지만, 대통령의 축전은 여전히 짧고 간단합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축전은 아주 디테일합니다. 마치 경기를 끝까지 다 보고 친구와 얘기하는 듯한 착각마저 듭니다.
문 대통령이 최민정 선수에게 보낸 축전에는 '시원시원하게 아웃코스로 추월하는 모습'이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서이라 선수에게 보낸 축전에는 '다시 일어나 끝내 달려 이뤄낸 결과'라는 서 선수의 넘어진 모습까지 담겨 있습니다.
'가던 길 마저 가자 했던 다짐','쇼트트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가 되겠다는 서 선수의 꿈을 늘 응원합니다'라는 축전을 읽노라면 선수들에게 진짜 힘이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축전은 대통령이 국민을 대신해 보내는 메시지'
임효준 선수가 받은 축전에는 '임 선수의 승리는 은사님과 후배들에게 행복한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임효준 선수는 평창올림픽이 열리기 전에 자신의 모교인 대구 계성초등학교 재학생들이 보낸 편지 22통과 포스터, 동영상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임 선수의 4학년 때 담임 교사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사연이 축전 속에 포함된 것입니다.
임 선수의 모교인 계성초등학교는 쇼트트랙과 피겨, 아이스하키 등 빙상종목을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습니다. 임 선수가 받은 축전 하나가 제2의 임효준 선수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어 보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의 평창올림픽 응원 모습을 보면 대통령인지, 일반 국민인지 구별이 가지 않습니다. 대통령이라도 국민이니 평범한 사람처럼 손에 땀을 쥐고 경기를 바라보고, 만세를 부르는 모습은 당연합니다. 그래도 아직은 신기해 보입니다.
과거 축전은 마치 임금이 백성에게 보내는 교지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축전은 국민을 대신해 보내는 메시지로 봐야 합니다. 문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선수를 응원하고 경기를 지켜봤기 때문입니다.
선수들이 받은 축전에는 대통령 문재인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마음이 담겨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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